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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편집국장 0 540

막말


인간에게 있어 ‘표현의 자유’만큼 중요하고 큰 의미를 갖는 것도 드물 것이다. 자유국가체제 하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는 먹고 입는 것 이상의 중요한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도 도가 지나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언제부턴가 눈길을 모으고 있는 특정 종교인의 ‘막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의 한 교회에 담임목사로 알려진 이 사람은 쉼없이 막말을 쏟아낸다. 마치 ‘막말제조기’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오늘은 무슨 ‘막말’을 하겠는가 하고 기다려질 정도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에 대해 동시에 막말을 쏟아냈다. 지난 달 19일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그는 지난 달 9일 생을 달리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두고 “박원순이가 죽으니까 국민들의 얼굴 색깔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헌법을 깨려 덤빈 놈들은 다 주님께로 호출을 당한다”고도 했다.


국민들의 얼굴이 뭐가 달라졌다는 걸까, 설마 아니,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사람이 이제라도 사라졌으니 얼마나 잘 된건지 모르겠다라는 건가. 만일 그런 생각이라면 이 사람은 사자의 가족이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에게 영원히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다. 살아 생전 아무리 사이가 나빴다 하더라도 삶을 마감한 사람을 향해 ‘잘됐다’라는 식의 표현을 쓴다는 건 분명 상식이하다.

또 “나는 문재인 안 미워한다. 진짜 안 미워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주여, 문재인 절대로 자살하지 말게 해 주옵소서’”라고. 이는 분명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생자(生者)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설마 아니, 문 대통령도 박 전 시장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리라는 기대를 걸고 내뱉은 말은 아닌지 하는 지나친 확대해석도 해본다.


그런데 이쯤에서 문득 필자에게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과연 이 사람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는 있는 걸까 하는 그런 생각.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몰아 붙이고 욕설을 해대니 그게 무슨 종교인인가,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 라는 개신교에서 도무지 ‘사랑’이라는 걸 찾아볼 수가 없다. 상대방의 잘못을 품고 헤아려 주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악담과 비난, 증오, 시기, 질투로 상대방을 몰아 세우니 과연 그러한 목회자에게서 성도들은 뭘 배우겠는가.


나의 생각과 맞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반대할게 아니라 ‘다름’과 ‘틀림’을 먼저 알아야 하는데 이 사람에게서는 그걸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말한 것들은 모두가 맞다고 생각하는가. 미안하지만 거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만일 자신의 말만 맞고 상대방의 말은 틀리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사회주의 사상이요 공산주의 사상이다.


이 사람의 악담은 계속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를 향해 “정세균 너 눈에 (교회가) 만만하게 보이냐? 그러면 너도 박원순 같이 된다. 그러지 말아라. 더욱이 교회 집사가 돼 가지고 그렇게 하면 되겠어? 당신 집사 아니야, 잡사야 잡사”라고 했다.


이쯤에서 필자는 이 사람의 좌충우돌, 아니 안하무인의 절정을 보는 것 같다. 아무리 자신이 한 교회를 대표하는 담임목사라고는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국무총리라는 직책이야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내려 놓으면 되나 교회 직분은 다르다. 더욱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잡사’ 운운하는 것은 함량 미달의 목회자더러 ‘목사’가 아닌 ‘먹사’(먹는데만 밝히는)라고 해도 좋은지 묻고 싶다.


왜 남의 위치는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이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생각하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더욱이 그러한 말을 하는데도 그 말을 듣는 사람(성도)들 역시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건 또 무엇인지. 분명 그 교회에도 그 목사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왜 그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마냥 참고만 있는건지.


작금의 시대는 분명 변하고 있다. 전후(戰後)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는 얘기다. 전후 당시에야 먹고 살기 힘들어 교회라는 장소에서 먹을 것을 기대었으나 지금은 사회가 교회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코 사회가 교회 속에 있는게 아니라 교회가 사회 속에 있다. 교회도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성경을 바탕으로 성도들의 영적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 목회자의 존재 가치라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는다면 어느 누가 그런 사람을 영적지도자라고 인정하겠는가.

바로 그런 사람들 때문에 한국 교회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오히려 더 깊은 수렁 속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김병학, 본지 발행인, 언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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